치매머니가 사라지고 있다
치매머니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는 고령 치매 환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뜻하는 말로, 최근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무려 154조 원에 달합니다. 엄청난 치매머니가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사각지대에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가 본격적인 실태 파악과 제도 개선에 나섰습니다.
치매머니, 요양·간병에 쓰이기는커녕 ‘잠자고’ 있다
치매는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질병입니다. 경도 → 중등증 → 중증으로 발전하면서 환자의 자산 관리 능력은 점차 저하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치매머니는 환자의 건강관리와 간병, 치료에 쓰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자산이 묶이거나, 심지어 가족이나 타인에 의해 무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2023년 기준 치매환자 124만 명의 자산을 조사한 결과, 이들이 보유한 재산과 소득이 총 153조 5416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순히 규모 파악에 그치지 않고, 단계별 치매 진행 과정에 따라 자산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추적하는 치매머니 실태 분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제도적 허점, 치매머니 활용 막는다
현재의 법 제도는 치매머니가 환자의 치료나 요양에 쓰이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의사능력을 상실하면 자산의 활용이 법적으로 어려워지고, 후견인을 세워야만 일부 재산 운용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성년후견인 제도는 절차가 까다롭고 신뢰 문제가 있어 실제 활용은 극히 저조한 상황입니다.
또한 일부 금융사에서는 치매 신탁 상품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행 신탁법에서는 '의사능력이 있을 때'만 계약이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어, 제도 활성화에 큰 제약이 따릅니다. 만약 계약 당시 의사능력이 없었다는 분쟁이 발생하면, 해당 신탁은 무효 처리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치매머니는 ‘있는 자산’임에도 환자 본인을 위한 지출에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후견인 제도와 신탁법의 단절, 해결책은?
치매머니의 제대로 된 활용을 위해서는 신탁법 개정과 치매 전용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현행법에서는 후견인이 신탁계약을 집행하거나 수정할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환자 상황이 바뀌어도 자산 운용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이는 자산이 환자의 요양비로 쓰이지 못하고 묶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일본은 이미 2012년부터 후견인이 신탁을 집행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후견+신탁’ 통합제도를 운용 중입니다. 이 제도는 신탁법과 민법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가족의 자산 유용을 막는 효과도 있습니다. 정부는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법 개정을 준비 중이며, 후견인이 일정 범위 내에서 신탁 계약을 조정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역모기지도 대안으로 떠올라
정부는 또한 치매 노인의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를 유동화할 수 있는 역모기지 활용 방안도 함께 검토 중입니다. 환자가 보유한 집을 담보로 생활비나 간병비를 조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실질적인 치매머니 활용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상황이라 구체적인 설계가 필요합니다.
치매머니는 치매환자 자신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제 치매머니는 단순한 노인의 자산이 아닌, 복지와 존엄한 노후를 위한 사회적 자산으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실태 조사와 함께, 신탁법 개정·특별법 제정이 병행되어야만 진정으로 치매머니가 환자 본인을 위한 용도로 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치매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환자의 자산이 환자의 치료와 간병에 사용되는 것이 당연해지기 위해서는, 지금이 바로 법과 제도를 정비할 적기입니다.